2012년 01월 25일
설연휴 전, 토요일.
느닷없는 손님이 날 찾는다고 하며 집으로 왔다. 큰 이모가 데려온 손님은 자신의 외손자.
즉, 내게는 오촌 조카쯤 되려나. 이종언니의 아들이니.
이종언니는 제작년 10월인가 9월경. 말기암 투병으로 사망했다. 7년을 투병했으니 오래 산 것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아들이 초등학교 졸업하는 것은 보지 못했었다. 당시 그 아이는 6학년이었다.
언니의 마지막 소원은 아들 초등학교 졸업하는 걸 보는 거였었는데.
그 애를 당시에 보고 이후에는 보지 못해서 그냥 풍문에 잘 크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 중학교에 갔을 테고 머리도 나쁘지 않고 공부도 잘하는 애니 (아마 6학년일때 전교 1,2등은 한다고 들은듯)
이모가 시원찮은 성격이라 이모가 손자를 챙기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때도 그 애는 내 시선을 잘 맞추지 못했고 회피했었다. 나도 짧은 몇분간 보고...
그 뒤엔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상주가 된 걔를 보았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걔가 6살때부터인가 언니는 투병했었고 오랜시간을 아팠다.
언니의 시어머니는 좀 지독한 성격이었다. 그렇게 며느리가 홧병으로 투병해도 고개를 끄덕여질만큼.
언니는 그 와중에 아들만은 제대로 키우려고 아들의 공부는 혹독하게 시켰던 것 같았다.
하여간.... 그랬던 걔가 날 찾아온 게 뜻밖이었다.
짐작가는 바는 뭔가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했었다.
이제 올해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걔는 나보다 훌쩍 키가 자라나 있었지만..
여전히 시선은 맞추지 못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자신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판타지? 무협? 뭐 그런 걸 쓰고 싶냐며 되물었더니
판타지, 라고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실제로는 글을 쓴적이 없지만 글을 꽤나 쓰고 싶어서 묻고 싶어서 온 것 같았다.
내가 라이트노벨이나 그런 것들을 언급하자 그런 쪽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어떤 소설의 무얼 보고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걔는 넙죽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웹툰의 강풀 이름을 대었다.
정확히 생각해보건데 느낌이 있는 대중문학 쪽의, 일반소설쪽 지망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판타지든 무협이든 로맨스든.... 일반소설이든 기본적으로 "쓸 수 있어야"한다는 개념이 깔린다.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아는 바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쓸지, 무엇을 써야하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공부는 해야 제대로 학식이 있어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성적도 유지해야하고. 대학은 가야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거라고.
옆에서 듣던 내 부모님들은 "저거 돈도 안 되는 글 쓴다고 시집도 못갔다"며 맞장구를 쳤고.
나는 현역작가고 2003년에 데뷔했지만 아직도 돈이 안된다고 말했다.
제법 미적거리던 녀석은 내가 연락처와 초심자에게 주는 충고 두세가지를 덧붙인 메모지를 주자 그것을 받아들고
이모와 함께 집을 나섰다.
처음 무언가를 쓸 때 넙죽 제일 긴 걸로 시작하면 어렵다고.
일단 단편으로 무언가를 써보면 봐줄수 있다고도 이야기했다.
....
.... 아직은 연락이 없고 내가 걔한테 내 연락처를 줬기 때문에 걔 번호를 모르는 이유도 있긴 한데.
문득 유전이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것은 모계유전이었다.
외가쪽 외할아버지가 상당한 기인이라 바람도 많이 피고, 글에 능했다고 한다.
(자손들이 왜 그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
어쨌든 나는 소설가이고 엄마도 글쓰기는 몰라도 읽는건 좋아했다.
죽은 이종언니도 국문과였다.
천하태평한 내 친언니도 사실은 글에는 재능이 있었다.
머리속에 든 게 없어서 그렇지. --; 사실 어릴때 습작을 하며 언니의 글을 상당히 부러워했다.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언니는 글을 간결하고 깔끔하게 이해가 가기 쉽게 썼다.
장황하게 써서 그것을 쳐내야하는 것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나로서는 마냥 부러웠었다.
헌데 그분은 공부와 담을 쌓으셨지. --
.............
헌데 쟤까지 소설을 쓰겠다니..... 어흑.
아버지의 허락도 받지 않고 혼자 온 것 같던데... 뭐랄까. 피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돈주고 글짓기 공부도 하는데, 어느 정도의 작문이나 소설, 글을 봐주는 것 정도는
나 역시 할 수 있을 정도지만...
한창 사춘기의 나이로 접어드는 데다 엄마의 부재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공부를 파는 걸 보면 숫기는 없지만 끈질긴 타입이라 한번 쓰기 시작하면 올인해버릴 가능성도 있다는
무서움도 있고....
글쓰기나 창작수업은 비싼 돈주고도 배우는 데 내가 어느 정도의 지침을 못 줄 것도 없지만서도.
내 필명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이 블러그를 걔가 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뭔가 마음이 마냥 복잡해졌다.
# by 나미브 | 2012/01/25 14:50 | 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